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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파의 사소함이 진실함으로

쿠파의 사소함이 진실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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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리 ・ 41분 번역보기 세계의 문화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고 재미있고 가끔은 뜬금없기까지 하다.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며 역사 속 다양한 사건들로 예기치 못한 문화가 형성되기도 한다.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서로 다른 문화 또는 비슷한 문화를 보고 있노라면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훑어보는 양 그 재미가 솔솔 할 때가 있다.우리가 흠뻑 빠져 있는 우리의 문화 또한 어디에선가 시작되었고 뒤섞였고 발전되기도 퇴색되기도 했겠지만, 그 뿌리와 의미를 되새기기엔 이미 그들은 우리의 삶이고 생활이기에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호주는 당연하기도 하겠지만 영국의 영향을 받아 재미있고 다양한 문화가 많이 존재한다.그중에 단연 하나를 꼽으라면 쿠파 문화가 아닐까? ‘Cuppa’는 ‘Cup of tea’의 슬랭 언어로 영국과 호주에서 주로 사용한다.호주에 가 사람을 만날 때면 늘 한결같게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또는 2시에서 3시 사이에 반드시 절대로 ‘쿠파 타임’을 갖는다.이쯤 되면 법으로 제정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그들은 바쁘거나 한가하거나 심심하거나 신나거나 반.

드.

시 ‘쿠파 타임’을 갖는다.

‘Let’s have a CUPA’, ‘Cupa time!!’ ‘CUPA!!!!’
호주에서 두 사람 이상 모였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 어쩌면 혼자일 때도 그들은 가장 많이 했을 말들이라고 확신한다.도대체 그들에게 쿠파는 무엇이기에 우리말로 해석하면 ‘차 마시러 가자, 차 마실 시간!’ 쯤 될 텐데…무엇이 그들에게 차를 그들의 운명으로 만들었으며 차 마시는 시간에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라는 이름을 부여했을까.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치면서도 아무도 반대하지도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는 마법의 시간….80대 할머니부터 엄마 손 잡고 문화센터 오는 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알고 지키는 신기한 문화 쿠파….그 사소함은 호주인들에게 어떤 의미이며 나에게는 어떻게 스며들었을까?

세계적으로 차가 유명한 나라들이 있다.중국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의 나라들 또한 차의 명성으로 유명하지만 유럽의 영국 또한 차 문화로 유명한 나라이다.세계의 가장 좋은 횟감은 모두 일본으로 가고 가장 좋은 찻잎은 모두 영국으로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영국인의 차 사랑은 유명하다.

영국인들은 하루 4~5잔의 차를 마시며 모두 다른 이름을 붙여 특별함을 부여하고 확고한 자부심으로 차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이다.유럽의 식수문제로 인해 시작된 영국의 차 문화는 점차 생존을 위한 수분 섭취 대안으로서의 차에서 사교와 친교의 문화로 변모했다.차 마시는 행위에 대한 예절과 차를 끓이고 마시는 데 동반된 다양한 절차를 만들고 단계를 만들어 차와 차를 구분하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 조차 구별하는 문화로 발전시켰다.귀족문화로 대변되는 영국의 문화에서 차는 사람을 구별하고 계층을 나누는 가장 훌륭하고 품격 있는 도구가 되었다.

계급 문화가 없어진 오늘날에도 영국의 차 사랑은 계속되며 영국인들은 차를 이용해 그들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기도 한다.아직도 차문화와 예절을 통해 귀족문화를 체험하고 알 수 없는 자부심으로 가득할 영국으로부터 호주인들은 딱 ‘차 마시는 여유’만을 가져온 듯하다.

호주는 영국의 교양과 미국의 자유로움의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나라이다.영어 표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 또한 애매하다고 하면 애매한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영국처럼 예의와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미국처럼 ‘내 맘대로 자유와 영혼의 나라’를 표방하지도 않는다.

영국의 격식 있는 영어 표현을 짧고 자유롭게 바꿔 표현하기도 하지만 영국의 격식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차문화 또한 마찬가지로 영국의 차 문화를 받아들이되 신사의 나라를 표방하는 차예절과 계급 문화 등은 가차 없이 버리고 진정한 사교와 친교의 의미를 강조하는 그들만의 특별한 차문화를 만들었다.일례로 영국에 있는 다양한 차문화를 나타내는 영어 표현을 ‘Cuppa’라는 한 마디로 통일했으며 차를 끓이고 먹는 방법 또한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맞게 변화시켰다.곧 쿠파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가져오되 그 방법과 절차에서 오는 딱딱함은 과감하게 없애는 과감함을 보였다.살다 보면 호주인답다는 생각이 드는 차 문화라고 무릎을 칠 텐데 호주인들은 그들답다는 말에 늘 머리를 갸우뚱거린다.

그렇다면 영국의 격식을 과감하게 버린 쿠파 시간에 호주인들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호주에서 나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호주인들과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모임을 갖고 있었다.당연하게 호주 땅에 사는 외국인들도 호주인과 같이 쿠파를 삶으로 받아들이고 즐기기에 우리는 늘 일정한 시간에 쿠파를 즐겼다.처음에는 왜 굳이 꼭 바쁘고 할 일이 있는데, 하던 일을 멈추고 쿠파를 하러 가는 것인가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게 굴던 때가 있었다.하던 공부를 멈추고 간다던지, 과제를 해결하고 있는 중간에 강의실 불을 끄질 않나, 추운 날씨에도 굳이 장소를 옮겨 굳이 차를 마시기에 효율성을 따지고 성격 급한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있는 때가 있었더랬다.

가서 하는 일은 더 가관이다.각자 마시고 싶은 차를 직접 타거나 테이크 어웨이 한 커피를 들고 오거나 못다 한 아침식사, 미리 하는 점심식사 등을 주섬주섬 꺼내고 앉아서 쿠파 타임이 시작되다.가끔 나눠 먹는 음식을 돌리기도 하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간단한 차나 음료, 쿠키 등이 쿠파 시간의 주인공이다.그러고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이럴 수가 그 시간 내서 굳이, 굳이, 굳이 모두 모여 춥고 덥고 시간 없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데 도란도란 이라니

안 되는 짧은 영어 동원하여 어떻게든 친해져 보려고 나도 한 번 도란도란해 보았다.그들의 도란도란은 무엇인가 드러나 보았다.그들은 어제 중고샵에서 새로 득템 한 스카프의 색을 찬양했다.그들은 손자, 손녀가 데려온 귀여운 강아지 사진을 돌려보며 귀여움에 찬사를 보내고 자신의 애완동물들을 간단하게 이야기했다.또 한 곳에서는 만들어온 쿠키를 칭찬하고 자신들만의 요리 노하우를 이야기했다.

이도 저도 없는 곳에서는 그 유명한, 영국인이라면 꼭 한다는, 그곳이 호주이긴 했지만 날씨 얘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아주 작은 하나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칭찬과 찬사를 날리고 여기저기 작고 사소한 것에 몰두하고 있었다.이런 총체적 난국이 어디 있는가.친하지도 않은 호주 할머니 할아버지들, 다른 나라 아줌마 아저씨들, 이웃나라 청년들과 앉아 낡아빠진 머그컵에 커피를 마시며 주말에 산 브로치 얘기를 하고 있는 나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처음 나의 쿠파는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의 회오리 속에 난처함과 난감함으로 버무려졌고, 나의 마음은 매일매일 쿠파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간 아까움과 하찮음과 어이없음으로 무장되었다.

그러다 문득 한국에서 쿠파 문화를 생각해 보았다.

쿠파라는 문화가 또렷이 존재하진 않지만, 우리의 친목과 사교모임은 어떤 종류의 화제와 사안들로 포장이 되어있는가.음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물론 다는 아니지만, 둘 이상 모이면 가장 재미있다는 뒷담화가 주를 이루고 자랑질과 이간질과 부채질과 도리질이 뒤를 따른다.일을 위한 또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는 건전한 모임 또한 부러움과 자랑질과 뒷담화가 덤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나에 집중하기보다는 남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가끔은 재테크 노하우를 가장한 자랑질과 다른 사람들의 걱정을 가장한 부채질과 이간질을 나누며 작고 사소한 것에서 조차 순수하지 못한 이면을 가진 경우가 많았던 듯하다.나와 주변의 소소함에 집중하기보다는 남의 이목과 사회적 과시를, 작은 것의 소중함보다는 효율과 효과와 발전에 무게를 두고 있지 않았을까.네가 어제 싸게 잘 고른 가방을 칭찬하기보다는 나보다 비싼 구두를 신은 너를 보진 않았을까.친구가 만들어 나눠주는 맛있는 쿠키에 고마워하기보단 쿠키 굽는 편안한 너의 인생을 부러워하고 주야장천 출근하는 나를 한심해 하진 않았을까.주어진 장면과 상황에 집중하지 않고 그 이면을, 그 넘어를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진 않았을까.이러고 보니 나는 속물인가 보다.편안한 모임조차 갖지 못한 나는 진정한 문화인도 못 되는 식민지인인듯하다.

한심하고 슬프고 외로운 며칠을 보내고 또 다른 쿠파

왜 작고 소소한 것의 소중함보다 크고 거창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보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에 치중하게 되었는지, 나 스스로가 한심해지자 호주 할머니의 하루가 귀에 들어왔다.인도네시아 친구의 요리가 너무 예뻤다.중국 아저씨가 보여주는 사진에 아들 결혼식이 궁금했다.나도 살포시 아들 사진을 내밀었다.

‘오~큐트’를 연발하는 그들의 얼굴에 가식도 부러움도 망설임도 없다.순수하고 맑고 행복하다.그들을 바라보는 나 또한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들의 순수함은 과장되고 포장되었던 나를 돌아보게 했고 그들이 던진 사소하지만 진실한 한 마디는 멈춰있던 나의 마음에 따뜻한 불씨를 댕겼다.
어쩐지 왜 호주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번지고 아기처럼 순수함과 진실함이 묻어나는지 궁금하더니, 하루하루 진실한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사소함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의 삶 때문이리라.

쿠파는 그런 것인가 보오.사소함을 진실함으로 바꾸는 힘.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보는 마음.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시간.호주인들은 현명하게도 영국의 차를 가져와 자기들만의 낭만과 행복으로 바꾸었고, 그들의 작고 소소한 행복은 먼 나라 친구인 나도 작은 행복에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이제 호주를 떠나 한국에 왔지만 나는 여전히 나만의 쿠파 시간을 지킨다.쿠파 시간만 되면 차가 고파, 간단하게 차를 마시며 나의 첫 쿠파를 떠올려본다.사소한 진실함으로 친구들을 물들일 준비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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