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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도시의 역사 The City>, 조엘 코트킨, 을유문화사 [크로노스 총서 18]

[책] , 조엘 코트킨, 을유문화사 [크로노스 총서 18]

image읽은 것 [책] <도시의 역사 The City>, 조엘 코트킨, 을유문화사 [크로노스 총서 18]
M ・ 1시간 도시의 역사 저자 조엘 코트킨 출판 을유문화사 발매 2007.04.20.옮긴이의 말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책”
감사의 글
머리말 “우리의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도시의 과거와 미래”
서론: 성스럽고 안전하며 번화한 곳들
연표

│1부│ 기원: 세계적인 맥락에서 본 도시의 발생

Chapter 1 성스러운 기원
-‘최초의 도시 proto-city’

*메소포타미아
-Sir Peter Hall, Cities in Civilization (New York: Pantheon Books, 1998)
-Tony Hiss, The Experience of Place (New York: Knopf, 1990)
-‘문명의 도심 inner city’

*이집트
“테베는 도시라 불린다.다른 모든 것은 테베를 통해 자신을 확대시켜 보여 주려고 테베의 그림자 안에 자리를 잡는다.” ㅡBC 15C 에 만들어진 찬가

*인도와 중국
-“우주를 본뜬 형태”를 향한 고대 중국 역사 대부분의 집착

*미국 대륙

Chapter 2 권력의 투영-제국의 중심지의 탄생
*사르곤: ‘제국의 중심지’의 창조자 – BC 2400년경
-‘제국의 중심지 imperial city’

*바빌론: 최초의 거대 도시 – BC 1900년 무렵

*안전과 도시의 붕괴 – BC 650년 아시리아 제국 수도 니네베,

*중국: 영구적인 도시 체제 – BC 2000 ~

Chapter 3 최초의 상업적 중심지들
*페니키아의 탄생
-“머리에 겨울을 이고 어깨에는 봄을 짊어진 동시에 여름을 발치에 잠재우고 있다.”
Michael Grant, The Ancient Mediterranean (New York: Scribner’s, 1969), pp.62-63

*”그들의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 호메로스 <일리아드>, 파리스가 헬렌에게 ” 시돈 “의 여자들이 짠 화사한 옷을 입힌 일을 묘사.
– 해변 바다달팽이의 분비기관에서 추출해낸 자줏빛 염료 – 포니케스 phonikes: 그리스어로 빨강/자줏빛

*페니키아 쇠락의 뿌리들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BC 814.쿠앗-하다쉬트Quat Hadasht : 신도시라는 뜻

│2부│ 유럽의 고대 도시들

Chapter 4 그리스의 위업
*크레타 섬 ~BC 16c
*미케네인: 그리스의 선조
*고대의 폴리스 BC 12c – 4c간 암흑기
*그리스인들의 국외 이주
*도시국가들의 황혼기 – BC 480 살라미스 해전 / 제1차 펠로폰네소스전쟁 BC 431-404
*알렉산드로스와 헬레니즘 도시 – BC 38 카이로네이아 전투
*알렉산드리아: 최초의 거대 코스모폴리스 – BC 323 ~ 여성들이 재산권 획득 ,
*알렉산드로스 비전의 퇴락

Chapter 5 로마-최초의 메거시티
*Petronius, The Satyricom , trans.J.P.Sullivan (New York: Penguin, 1986), pp.11-13
*의기양양한 로마인들
-당시 가장 선진화된 문화의 소유자 에트루리아인들의 천연 교역로
-소금 퇴적물
-키케로, “이곳이 내 종교이고, 이곳이 내 인종이며, 이곳이 조상들이 남긴 흔적이다.” ~로마라는 관념과 입지에 대한 독특한 일체화
*제국의 중심지의 발달 과정
-부유한 귀족과 곤궁한 평민들 사이의 장기간 동안 지속된 갈등 –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전쟁에서 승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노병들이 땅도 없고 “집도 없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야만 하는 신세가 됐다.”조상을 위한 제단도, 묻힐 땅도 없는 그들은 다른 이들이 부와 사치를 누릴 수 있도록 싸우다 죽는다.”
-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 / BC 44 카이사르 암살 /
-아우구스투스, “벽돌로 만들어진 도시를 발견한 나는 그것을 대리석의 도시로 만들었다.”
*로마: 메거시티의 원형
-BC 31 악티움 해전, 헬레니즘 시대의 끝
-공공 토목공사 -도로, 수도, 하수도-
-새로 지은 아우구스투스 포럼과 마르스 신전 같은 거대한 건물들을 고상한 대리석 조각상이 뒤덮고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빈민굴과 비슷한 거처에서 살았다.부자들의 개인저택인 도무스 domus 1채당 아파트형 주택인 인슐라이 insulae 가 26블록 있었다.카이사르가 입법했음에도 많은 아파트 빌딩들은 여전히 삐걱거렸고 때때로 무너졌다.그리고 너무나 자주 불길에 휩싸였다.
-메거시티 (megacity: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 의 인구를 먹이고 입히고 물을 공급할 필요성
*코스모폴리탄 세계 제국
-에드워드 기번, “로마인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준비하는 방법을 통해 평화를 수호했다.”

Chapter 6 고대 도시의 그늘
-노예는 항상 고대 세계의 중요한 일부분이었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살던 무렵의 로마는 노예들이 로마 사회의 중산층을 형성하는 중요한 계층인 장인들과 소매 상인들을 점점 대체, 그 결과 중산층의 상당수가 채무자가 되면서 국가에 의지, 수도 거주자의 셋 중 한 명이 실업수당을 받는 처지가 됨 Karl Marx, Das Kapital , trans.David Fernbach (New York: Vintage, 1977) vol.

1, p.232; vol.2, p.730; Michael Grant, The Fall of the Roman Empire (London: Weidenfeld and Nicholson, 1997), 103, pp.126-29
-과거에 정복 활동은 유민이 된 로마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했으나 새로운 영토를 더 이상 습득할 수 없게 된 지금의 제국은 광대한 도시들의 네트워크를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벅찬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안전하고 수월한 커뮤니케이션이 와해되면서 장거리 교역은 쇠퇴했다.

*인간의 도시 대 하나님의 도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 외의 다른 고대 세계의 중심지에서 창시된 이국적인 종교
-새로운 관념들-기독교-이 직접 로마를 파괴한 것은 아니다.

낡은 가치관의 붕괴 가 우선되지 않고는 새로운 가치관의 패권 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제국의 광대한 도시 인프라스트럭처
-기독교는 로마의 자산을 복음 전도에 활용했지만 기독교 신앙 자체는 도시-제국의 핵심 가치관의 상당 부분을 거부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The City of God >, 죽어가는 메트로폴리스를 개혁하려는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대신 또 다른 종류의 메트로폴리스, “인간의 지혜는 없고 오로지 믿음만이 있는” 곳인 하나님의 도시로 들어갈 길을 찾으라고 로마인들에게 강권했다.

*”모든 게 방치됐다”
-로마의 멸망 이후 몇 세기 동안 서유럽을 지배한 황폐함.

“내향적인 문화의 단순화”.”지평선들이 좁아지는 시대, 향토의 뿌리들이 강해지는 시대, 케케묵은 충성심이 굳건해지는 시대”.

George L.Gowgill, “Onward and Upward with Collapse”, in The Collapse of Ancient States and Civilizations , p.270
-서유럽과 북아프리카 인근 지역은 호전적이고 미개한 봉건 영주들에게 귀속됐다.카르타고부터 로마와 밀라노에 이르는 서구의 거의 모든 거대 도시들은 심각한 인구 감소를 겼었다.

AD 4세기 초입에 인구가 대략 6만 명이었던 게르만의 트리어는 1300년에도 겨우 8천 명 인구에 불과

*콘스탄티노플: 살아남은 도시
-서구와 단절된 도시의 ‘점진적인 동양화 orientalization -.,-‘.권세 좋은 궁중의 환관, 복잡한 궁중 의식, 권력의 전제적 집중화 등
-콘스탄티노플은 고대 세계의 코스모폴리탄 관념으로부터, 종교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더 멀어졌다.제국은 유대인, 기독교 이단자, 다신교도들을 점점 더 박해했다.
프로코피우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종교적 견해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을 죽일 때에는 그것을 살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AD 6세기 말에 퍼진 대역병 +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들
-7세기/8세기에 이슬람 발흥

│3부│ 동양의 시대

Chapter 7 이슬람의 군도
-1325년,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이븐 바투타(마호메트)
– 무슬림 패권 > 유럽 어버니즘
*무함마드의 도시에 대한 비전
-초기 이슬람의 역사는 도시 거주자들의 역사다.
-가혹할 정도로 건조한 기후-“숨막히는 열기와 치명적인 바람, 구름 같은 파리떼”에 시달리는 곳- 아래에서는 통상만이 유일한 경제적 기반이었다.
-대부분의 메카 사람들은 양떼를 먹일 목초지와 물을 찾아 광대한 헤자즈 지역을 떠도는 베두인의 자손이었다.
-낡은 씨족사회에 존재하는 유혈 분쟁의 혼돈을 대체할 고상한 체계 – 이슬람은 종교적 프로그램인 동시에 사회적 정의와 질서에 대한 요청이기도 했다.
-코란에 밝혀진 무함마드의 사상은 전통적인 사회적 약자들을 염려한다.

그는 오래도록 온갖 종류의 학대의 대상이던 여자들을 가혹한 대우로부터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다.남자들이 둘 수 있는 아내의 수는 가족을 부양할 부의 수준만이 유일한 제한 요인이던 과거와는 달리 네 명으로 제한됐다.남자들은 적절한 존경심으로 아내들을 대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빈자들 역시 보호의 대상이었다.자선은 신앙심의 필수적인 표현이 됐다.부자들에게는 “걸인들과 불우한 이들을 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코란은 가르친다.
-움마 ummah, 이슬람 공동체.

단일 신앙으로 묶인 더 큰 공동체에 대한 관념은 전통적인 이교 숭배와 유서 깊은 씨족 관계의 우선성을 모두 뒤집어엎었다.
*이슬람 도시의 본성
-632년 무함마드 사망.무함마드의 계승자인 칼리프들.
-공공건물과 공간을 강조한 고대와 달리 신앙이 우선이라는 관념이 이슬람 도시의 건물 배치에 명확하게 반영되어 모스크들이 도시 생활의 중심으로 솟아올랐다.
*다마스쿠스: 지상 낙원
-661년 정치적 수도 메디나 ->팽창하는 제국의 행정과 커뮤니케이션, 상업적 요구에 더 적합한 도시인 다마스쿠스로 이동
-다마스쿠스는 거대한 코스모폴리탄 도시였고 다양한 기독교 분파들과 유대인들의 고향이었다.이슬람 치하에서 이 “성경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그대로 지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그들은 예전의 비잔틴 통치자들 치하에서보다 훨씬 자유로웠다.코란은 딤미들(dhimmis, 보호받는 자들)이 새로운 정권에 공물을 바쳐야 하며 따라서 “겸손해야만 한다”고 밝히지만 그런 점만 제외하면 그들의 권리는 보장되었다.이런 상대적인 관용은 유대인과 일부 기독교도들이 무슬림이 그들의 도시를 탈취하는 것을 환영하는, 심지어는 지원하기까지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슬람 도시 생활의 코스모폴리탄적인 특징은 교역의 증대를 비롯해 예술, 과학의 발달도 이끌었다.

새로 정복한 도시들에서 아랍의 정기시는 종종 그리스-로마의 아고라를 발전시켰다.통치자들은 공들여 상업 지역을 개발했다.그곳에는 뜨거운 사막의 태양을 피할 그늘을 드리우는 커다란 건물들과 교역을 위해 방문하는 상인들을 위한 창고와 숙박시설들이 있었다.새 통치자들은 로마 시대 이후로는 본 적이 없는 속도로 도서관과 대학, 병원을 지었다.
-이라크 바스라, 북아프리카 페스와 마라케시, 이란 쉬라즈, 스페인 코르도바.
*바그다드: 세계의 교차로
-8세기 말 압바스 칼리프가 창건한 새 수도.
*카이로의 황금기
-10세기에 창건된 카이로는 이어지는 3세기 동안 칼리프의 통치가 이뤄지는 고상한 정치적 중심지에서 완전히 성장한 코스모폴리탄 도시로 팽창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사르곤 치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나중에 로마에서 볼 수 있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상업적 활력은 정권이 보장하는 강력한 치안력에 의지했다.
*북아프리카로부터 중국의 국경선까지
*이슬람을 통한 인도의 재탄생
-힌두교가 장려하는 카스트 제도는 교역을 비난하고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억눌렀다.

그 결과 인도의 도시 발전은 매우 허약했다.
“인도 사람들은 자기들 나라 외에 다른 나라는 없다고, 자기들 나라 같은 나라는 없다고, 자기들 왕 같은 왕은 없다고, 자기들 종교 같은 종교는 없다고…믿는다.그들은 그들이 아는 것을 주고받는 데 인색하게끔 타고났고, 자기네 나라 사람 중에서도 다른 카스트 출신의 사람들이 그걸 얻지 못하게끔 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물론 외국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11세기 아랍 사학자 알베루니.
Chapter 8 중화의 도시들
-사학자 버나드 루이스, 세계 정복과 개종을 추구하는 이슬람과 달리 중국은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려는 강한 열정이 없었다.중국은 위대한 ‘중화’로서 경제적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문화적으로 모든 것을 완비한 나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영향력은 귀감이 되는 것을 통해서나 아니면 정복을 통해서나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로 확장됐다.그러나 중국의 문화에는 비 중국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초월적인 가치관이 없었다.다른 문화권에 속한 개인은 이슬람 교도로 개종하는 게 가능했다.그러나 어떤 개인이 중화의 패권을 내면에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그 개인이 진정한 중국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농경 사회의 도시 전통
-도시 중심의 이슬람 문화와 심하게 대조적으로 중국의 도시들은 현저하게 농업에 기초한 문명의 틀 안에서 생겨났다.

16세기에 이르러서도 명나라의 황제들은 황궁 마당에서 빈틈없이 짜여진 의례에 따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계속 올렸다.
*”우주 질서의 북극성”
-중국의 중요한 도시들은 주로 제국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BC 1000년의 주나라 통치기에 개발된 중심지들은 관료제와 제사 기능 그리고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군대를 갖추는 일반적인 패턴을 형성했다.

제조 활동과 상업은 지배 엘리트들에게 봉사할 목적으로 발달했지만 일반적으로는 부차적인 역할만 수행했다.
-중국의 도시들을 발전시킨 원동력은 통상이 아니라 정치였다.
-제국의 관료제는 도시 생활을 고도로 규제했다.
-이슬람 성지들은 성스러웠지만 이슬람 역사의 첫 세기가 지난 후에는 더 이상 정치적 권력의 권좌가 아니었다.중국에서 권력과 신성은 하나로 묶여 이동했다.황제가 거주하는 곳이 바로 성스러운 곳이었다.
*하늘에 뜬 거대한 구름”
-AD 618년~ 907년, 당 치하에서 상업적 도시들이 처음으로 꽃을 피움.960년 패권을 잡고 교역을 장려한 송 치하에서는 상업을 중시하는 정책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Chapter 9 잃어버린 기회
*중국과 다르 알-이슬람의 도시가 보여 줬던 역동성은 1600년 무렵 힘을 잃기 시작했다.
*번영이 지닌 문제
-오랫동안 지속돼온 우월적인 입장, 전형적인 중국 황실의 태도, “절반 정도 문명화된 미개인들”의 땅에서 “문화라고는 모르는 미개인들”의 땅으로.
-유럽의 군사적, 기술적 우월성이 이미 뚜렷해지고 있던 18세기가 될 때까지도 다르 알-이슬람에 사는 엘리트들의 외국인들, 특히 유럽인들에 대해 경멸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절대 권력의 한계
-절대 권력의 지배는 아시아와 이슬람 도시들의 발달 속도를 상당히 늦췄다.절대 권력 구조는 동양의 도시들이 이븐 할둔이 “정권의 자연스러운 수명”이라고 묘사한 것에 특히 취약하게 만들었다.
-오랜 정착지에서 호사스러운 생활에 맛을 들인 시기가 길어질수록 이 통치자들이 상무 정신과 도덕적 결단력 모두를 잃는 시점이 빨라진다고 아랍의 학자는 기록했다.말의 등 위에서 생활한 경험 없이 응석받이로 자란 후손들이 거친 삶을 산 조상들의 장점을 지니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1258년에 몽골 침략자들이 허약해진 압바스 왕조의 군대를 제압했을 때 바그다드가 맞은 운명0침략자들은 최후의 칼리프를 그의 가족들 상당수와 더불어 처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민의 상당수를 학살했다.

도시의 대부분은 폐허가 되어버렸다.바그다드는 다시는 “세계의 교차로”가 되지 못했다.
-송, 원, 명, 청은 각각 건국 초기에 상당한 정도의 군사적 장점과 효과적인 통치력을 지니고 있었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왕조는 점차로 허약해지고 부패해졌다.특권 관료들과 귀족들, 쓸데없는 군인들로 구성된 엄청난 규모의 무리가 제국의 부를 빨아먹었다.

결국 왕조의 수도들은 새로운 유목민 침략자들 앞에 취약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대 상인들에 대한 탄압
-동양과는 대조적으로 유럽 신흥도시의 상인과 장인 계급은 도시 경제를 활성화하고 종종은 정권의 교체를 강요할 수 있는 대안적인 활력을 제공했다.
-중산층이 그처럼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 경우는 일본과 한국, 중국, 인도, 이집트 등에서는 생기지 않았다.모든 곳에서 절대 권력은 제멋대로인 과세, 사유재산 몰수, 왕실의 총애를 받은 이들을 위한 정실 정치를 통해 상인드르이 의욕을 꺾어버렸다.
*유럽의 재등장
-동양의 허약화 +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에서 급부상한 유럽 도시들의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의 발달.16세기 말.
-17세기 말, 포르투갈과 스페인, 네덜란드의 상인들은 향신료가 풍부한 동남아시아 지역과의 교역권을 점차로 장악 / 아프리카의 노예와 상아, 황금을 사고파는 사업도 장악

│4부│ 빛나는 르네상스의 서양 도시들

Chapter 10 유럽에 찾아온 도시 르네상스
-가톨릭 교회
*르네사스의 성스러운 뿌리들
-기독교 수사들은 유럽 도시의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 무낮와 고대의 텍스트 그리고 지적 엄격함의 전통을 보존했다.
-안전이 보장되는 영역과 활발한 경제
*도시국가의 귀환
-이탈리아 북부의 상인과 장인들은 방어를 위한 무장 군대를 보유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성벽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는 도시의 상인과 장인들은 동양의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독립성을 향유했다.사유재산권이나 상업 계급의 특권을 억누르려는 황제도, 칼리프도, 술탄도 없었다.서양에서 자치권이 있는 도시와 태동기에 있던 자본주의는 동반 성장했다.
-“돈벌이에 대한 사랑은 애향심과 결연을 맺었다.” -앙리 피렌느
-이탈리아 / 로마인들의 도시 인프라스트럭처 / 1095년 1차 십자군 원정 /더 발달한 이슬람권 도시들 / 고리대금
*베니스: 세상의 보석 상자
-베니스 자신들이 보유한 경제적 권력을 통해 자신들의 위대함을 세상에 과시했다는 점이 현대 도시의 구극적 형태의 전조 (x 제국적인 정복 x 신성한 중심지)
-베니스인들은 기독교 세계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들과 냉혹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시기에도 이슬라묙도들과 교역했다
-중개인 / 금융업자 / 제조업 ~ 선박 건조, 군수품 제조, 유리 제조
-유럽 대부분의 지역이 이방인을 향한 불관용과 폭력 때문에 암흑기를 겪던 시기에 베니스는 확연한 코스모폴리탄 성격을 보여줌
*플로렌스와 근대적인 도시 정치의 출현
-플로렌스: 은행업 ~ 직물 교역 / 제노바: 지중해 교역의 지배권
-도시의 지배권을 놓고 경쟁하는 길드들, 상인들, 귀족들, 성직자들 ~
-규제 (특히 통상 관련)는 도시의 경제적 이득이나 가장 권세 좋은 시민들을 위해 기획되고 도입됨
-플로렌스 메디치 가문
*도시국가를 압도하는 제국의 도시들
-14세기 단테.

맹목적인 탐욕이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을 파멸시킬 것이라고 경고
-앞선 세대들로부터 물려받은 부, 높은 수익을 추구하면서도 노동은 경멸, 전원 사유지나 도시 외곽 투기 지역에 돈을 씀.-> 자본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됨에 따라 기능공들은 규모가 커져가는 무산 프롤레타리아로 전락.남아 있는 제조업자들은 조직에 속하지 않은 시골 지역의 영세농이나 다른 나라에 하청을 주며 왕년의 길드 구조 한층 더 심하게 붕괴.
-이탈리아의 통치자들은 외국의 적들에 맞서 단결하기 위해 필요한 계몽된 이기심이 부족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욱일승천
-기독교적인 열정에 불타는 신흥국가 포르투갈과 스페인 / 15세기를 기점으로 대양 진출 / 이탈리아인들이 오랫동안 지배해온 교역 루트들을 훼손시킬 매혹적인 신흥 시장들을 개척
-1498년 바스코 다 가마, 캘리컷
-15세기 말 16세기 초, 크리스토퍼 콜럼벗, 존 캐벗, 지오반니 다 베라자노 ~ 탐험가들
-17세기 리스본 / 스페인 세비야 항구, 수도였던 바야돌리드, 훗날의 마드리드 같은 도시의 성장
*파리: 궁극적인 유럽의 수도
-10세기 끝무렵 카페 왕조
-확장되어가는 군주제의 힘과 대학의 번성, 영적 사상의 중심지로서 가진 중요성: 파리는 관료와 성직자, 학생과 학자들의 도시로 번성했다
-1594년 부르봉 왕조 앙리 4세, 프로테스탄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첫 군주,
-관료제 확장, 거대한 제국의 수도 파리,
-1670년대, 루이 14세,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는 대로, 앵 발리드 군인병원, 수많은 개선문,
-루이 14세의 재상 콜베르.”백성들이 경외감을 품고 바라보게 만들 건물들보다 군주의 위대함을 더 잘 보여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가 재정 파탄, 서민들의 궁핍, 수도의 굶주림과 폭동을 방지하기 위해 주변 시골 지역에서 곡물 징발 – 파리는 “피를 빨아먹는 향락과 악덕의 대도시”
-17세기 경 유럽 대륙에서 으뜸가는 예술적, 문화적 수도.이후 3세기 동안 파리는 도시 집중화와 웅장함의 전형으로 간주됨.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통치 전통.국가 자원의 엄청난 부분을 파리에 투입.
-루이 나폴레옹, 1851년 권력을 잡은 직후 파리는 프랑스의 심장 선언.

잘 설계된 공원들로 장신된 넓은 대로, 뚜렷한 프랑스식 도시 배치와 설계, 건축.
-> 빈, 워싱턴 D.C., 부에노스아이레스, 하노이 건축가들에게 영향

Chapter 11 맘몬의 도시들
-집요하고 성공적으로 맘몬 (mammon, 부와 물욕의 신)을 좇는 일
*유럽의 확장돼 가는 도시 질서
-유럽의 도시화 수준이 고대 이후 처음으로 아시아와 근동의 수준을 능가
-성장해 가는 도시 네트워크에서 어느 도시가 최적의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
~ 더 넓어지는 세상으로 난 주요 통로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한 도시들
*이베리아 반도 제국들의 실패
-리스본과 세비야, 훗날의 마드리드 실패의 핵심 요인은 문화적 가치관.도시와 경제 건설자 << 중세 시대의 기사.영광과 하나님, 귀금속을 좇았다 -격렬한 종교적 불관용 ~ 유대인들과 마라노(중세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기독교로 개종당한 유대인) -1492년 국외 퇴거 명령에 따라 18만 명이 넘는 유대인과 마라노들이 나라를 떠남 -"콜럼버스의 항해 덕에 스페인은 대륙을 얻었다.유대인들의 추방 탓에 그들은 두 팔과 두 다리를 잃었다." -사학자 바넷 리트비노프 -부는 주로 세비야를 통해 스페인에 밀려들어 왔지만 결국 그 부는 이탈리아 중간상과 상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스페인의 식민지로 향하는 수출품조차도 대부분이 다른 곳에서 만든 제품들이었다. 끊임없이 벌이는 전쟁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고 귀족들을 위한 사치품을 구매하기 위해 외국인들에게 저당 잡힌 제국의 황금은 곧 재앙이 되어버렸다. *북부의 출현 -앤트워프, 암스테르담, 최종적으로 런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도시들이 17세기와 18세기를 통과하며 쇠락한 반면 네덜란드의 도시들은 4배, 런던에 있는 도시들은 6배 이상이나 성장했다 -은행가, 상인, 숙련된 기능공들이 수행한 세속적인 기능들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5세, 가톨릭 신앙을 강요하겠다는 왕조의 욕심이 생산성 높고 프로테스탄트의 비중이 높은 북부 도시들을 어느 스페인 장성ㅇ이 밝혔듯이 “유럽의 묘지”로 탈바꿈시켰다 *암스테르담: 최초의 거대한 현대적 상업도시 -동시대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과는 대조적으로 암스테르담을 지배한 것은 귀족이나 성직자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무역상과 소매상들 -운하 시스템의 확장을 통해 교역 능력을 체계적으로 증대시킴, 방어선 강화, 벽돌 건축 법제화를 통해 화재의 위험을 막음, 위생 설비 개선 조치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결정적인 게임 -17세기 초입 인구의 절반이 읍과 도시에 거주하던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도시화된 사회가 됐다 -칼뱅주의 신앙: 고리대금을 반대하는 옛 가톨릭의 법률들을 삭제했고, 자본주의 기업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뿌리 깊은 편견들을 없앴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와 절정기의 카이로, 15세기의 베니스처럼 암스테르담의 상업적 성공은 인구의 다양서에 많은 힘을 입었다. 지배적인 네덜란드 개혁 교회 / 가톨릭 / 위그노 / 유대교 / 루터교 / 메노파 / 대략 시민 중 25%는 공식적으로 인가 받지 않은 종교를 믿는 인구. -“신앙의 자유라는 기적은 교역에 집중하는 공동체 어디에서건 볼 수 있다.”, 프랑스 사학자 페르낭 브로델. -상업적 활력과 다양한 인구의 결합은 예술과 기술, 철학 분야에서 과감한 혁신을 일으키기에 이상적인 분위기를 창출 – 대학, 과학협회, 출판사를 통해 개방적인 연구와 혁신을 키워내기까지 함 -와인, 목재, 설탕, 화학 제품 같은 상품 교역 ~ 17세기 무렵 “값진 교역” – 염료, 유약, 도자기, 리넨, 고급 가구, 태피스트리 -을 위한 혁신적인 기법들 ; 엔지니어링 서비스와 산업적 전문 지식, 기술 수출 -네덜란드 중산층 팽창 ~ 주요한 문화적 중심 세력 ~ 16세기와 17세기의 네덜란드 미술가들은 숙련된 장인-태피스트리 디자이너, 모피 재단사, 금 세공인 등-의 아들인 경우가 잦았다.이 미술가들은 지역의 상류층 상인과 제조업자들에게서 후원을 받았다. 미술은 명성을 얻는 방법일 뿐 아니라 돈을 버는 방법이기도 했다.일급 초상화 화가인 렘브란트는 대학 교수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런던: 세상 만물의 찬란한 전시장 -문화의 민주화~ 기술 발전 덕에 대중이 서적을 더 쉽게 접함 / 스피노자 같은 유대인들, 여자들도 지적이고 문화적인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됨 / -런던이 지적인 성취와 상업적 활력의 양 분야에서 암스테르담을 능가 하기 시작 – 17세기 말 네덜란드의 자본가들은 -그들보다 앞선 시대의 베니스 자본가들처럼- 이제는 새로운 벤처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토지나 주식에 돈을 투자하는 불로소득 생활자가 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잦았다 -튤립 광풍 1636~37, 단기적 금융 소득 > 해외 점유 지역 방어
-이제 막 생겨난 식민지 뉴 네덜란드, “세계의 상품을 모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천혜의 부두”, 강들과 바다로 열려 있는 만들로 둘러싸인 인구 1천 명 조그만 식민지는 네덜란드의 사업을 확장시킬 더할 나위 없는 기회.그러나 주위를 둘러싼 영국 식민지들의 침입을 막아야 할 필요성에 직면한 네덜란드 사업가들은 조그만 식민지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쓰는 것을 망설였다.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외진 곳에 떨어져 있는 데다 방어하기도 쉽고 설탕 같은 상품들이 풍부한 수리남을 계속 지배하는 것이었다.

1664년에 싸움 같지도 않은 싸움을 한 차례 치른 끝에 네덜란드인들은 영국인들에게 뉴 네덜란드를 넘겨줬고 영국인들은 이 중요한 도시의 이름을 뉴옥으로 재빨리 바꿔 달았다.
*세계 자본주의의 수도
-뉴 암스테르담 -> 뉴욕,
-런던은 영국의 훨신 많은 인구를 식민지 이주자로, 병사로, 선원으로 끌어올 수 있었고 / 석탄, 철, 주석 같은 주요한 자원도 보유했다
-런던의 부상: 거대한 수도의 이점을 네덜란드 교역 중심지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상업적 능력과 결합시키는 능력
-프로테스탄트주의의 승리.헨리 8세가 왕국의 대략 1/6에 해당하는 교회의 토지를 팔아버린 사건은 국가, 상인과 장인들을 포함한 유산 계급 모두를 부유하게 해줌 .
– 중산층과 노동 계급 출신의 벼락부자들-일부는 귀족사회에 진입하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은 사학자 F.R.H.뒤불레이가 “야심의 시대”라고 명명했던 시대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영국의 선원 들 / 장거리 무역 / 인도와 인도의 엄청난 교역을 서서히 탈취
-1712 “끝없는 템스 강은 전 인류를 위해 흐르리”, 알렉산더 포프
-1666년 대화재 이후 엄청난 규모로 재건된 런던은 얼마 후 유럽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의 상인과 은행가들이 영국의 수도로 점점 더 많이 몰려왔다.플랑드르와 독일, 프랑스 같은 곳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해오는 사업가들과 숙련된 노동자들로부터도 수혜를 받았다.
-성장일로에 있는 세계 경제를 통제하고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활력 넘치는 경제 기관들을 만들어낸 것은 런던 뿐 ≠ 파리, 마드리드, 빈, 상트페테르부르크

│5부│ 산업 도시

Chapter 12 영국과 미국의 도시 혁명
-18세기 말 영국, 런던, 제조업 기술의 혁명, 상품의 대량 생산과 연계한 도시 창출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통일된 상태였던 영국 vs 이탈리아, 프랑스
-가톨릭 권력 집단과 그들이 보유한 광대한 토지를 모두 없애버린 것
-부자들이 자신의 조상이 무슨 일을 했건 상관없이 기업을 세울 수 있는 자유를 누린 것
-1768년 다축 방적기 발명, 리처드 아크라이트.

예전의 장인 계급 출신~초기 혁신자
-제국주의적 벤처 사업-면화, 담배, 노예-에서 파생된 자본이 섬나라 영국의 산업 발전 자금 대부분을 조달함
*랭커셔: 혁명의 발상지
-런던~주식, 석탄과 양모 같은 상품의 세계적인 교역을 관리하는 사무원을 1만 명이나 고용한 전문기관들을 갖춤
-랭커셔 지역 주요 도시 맨체스터 인구 19세기 동안 9만 4천 명 ~ 27만 명 ~ 두 배 이상 늘어남
-브래드퍼드, 소모사 제조의 중심지.19세기 전반부에 시내 공장들의 생산 능력이 600% 이상 신장, 인구 1만 6천 명 -> 10만 3천 명으로 폭발 / 급성장
~공산품의 대량 생산에 의지해서 탁월한 도시로 도약한 세계적 도시 혁명의 출발점
-1881년경 영국의 도시 거주자들은 전체 인구의 2/3, 인구의 태반이 대도시에 거주하는 최초의 국가
*”포학한 톱니”
-프리드리히 엥겔스, 맨체스터의 노동 계급 기숙사에 관해
어디를 가나 폐품과 음식물 쓰레기, 오물이 보인다… 강둑에 나 있는 아주 울퉁불퉁한 좁은 길을 걸으면 양옆에 빨랫줄이 걸린 기둥들이 있고, 그 빨랫줄 사이에 자그마한 방 1개짜리 단층 오두막들이 엉망진창으로 모여 있는 곳에 다다른다.그 집들의 대부분은 맨땅바닥을 그냥 마루로 쓰고, 일과 생활, 수면이 모두 같은 방에서 이루어진다.
Friedrich Engels,
-19세기 초입 맨체스터의 사망률은 25명당 1명, 주변 농촌 마을들의 거의 세 배.
질병과 영양실조, 과로 때문에 사망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공장들은 멀리 떨어진 시골이나 궁핍해진 아일랜드로부터 지속적으로 노동자를 조달받아야만 가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 세계 최대의 경제력을 보유한 나라가 분명한 영국에서 극단적인 가난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같은 침체된 나라들에서보다 더 많이 퍼져 있었다
-브래드퍼드를 방문한 어느 서인도제도의 노예 소유자는 “9살밖에 안 된 아이더러 하루에 12시간 반을 일하라고 요구하는 잔인한 짓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새로운 산업사회가 유례없는 부를 창출했을 지는 모르지만 그 부는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가치관을 모조리 희생한 대가였다.

산업화된 도시에는 마르크스가 “금전에 의한 인간 관계의 결합”이라고 부른 것만 있었지, 성스러운 공간이나 주목할만한 사회적 윤리는 대체로 없었다.1950년대 무렵 예배에 참가하는 사람의 수는 50% 이하로 줄어들었고 맨체스터 같은 도시에서는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윌리엄 블레이크, 이 기계화된 시기의 충격에 대해 느끼는 공포
그리고 거기서 로크의 베틀을 보라.

그것의 씨줄은 암울하게 울부짖는구나,
뉴턴의 물레방아에 추동되어.검은 천이
암울한 화환으로 온 나라를 덮고 있다.많은 바퀴의 잔인한 작업으
나는 본다.바퀴 없는 바퀴.포학한 톱니가
서로를 억지로 밀어내는, 에덴의 바퀴와는 다른 그런 바퀴.
The Complete Poetry and Prose of William Blake, ed.David V.

Erdman(New York: Anchor Books, 1988), p.329.
*기계화의 혜택
-1850년대 무렵, 불안해 보이는 철도교와 넓은 터널 시스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공장 지대 등 세 체제의 징조들이 영국 도시 전역에서 확연히 나타났다.
-토크빌, 영국에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여행객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세기 중반 무렵 공장을 영광스럽고 번영하는 미래의 선구자로 보는 낙관주의가 확산되면서 영국의 서민들도 기계화의 혜택을 누리기 시작했다.
1) 노조의 성장 덕분에 임금이 올라
2) 숙련된 직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중산층에 진입.기업가 계급 출신의 아이들은 이제 상류층이 다니는 대학에 입학했다.적절한 칭호가 없는 고귀한 귀족이 된 사람들 중 일부는 결혼이나 영향력 행사를 통해 귀족 신분을 습득했다.
-1835년 지방자치제법, 1848년 첫 공중보건법 ~ 산업 시스템의 가장 두드러진 결점들을 개혁하기 위한, 빈민을 위한 공원과 욕탕, 세탁소 설립 – 새로운 위생 대책들과 의학의 발달에 힘입어 도시 사망률은 현저히 낮아짐 / 한때 판치던 범죄는 극적으로 줄어듬
-맨체스터, 리버풀, 리즈, 브래드퍼드 같은 도시들이 이제 과거의 티레나 플로렌스처럼 인류의 운명을 개선하고 있는 발명품들이 만들어지는 “지성의 온상” 이었다.의심할 여지없이 하늘은 오염됐으며, 추잡하고 끔찍한 빈민굴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한때는 황량했던 이 도시들은 부 덕분에 “유명한 베니스의 궁전들과” 자웅을 겨루는 웅장한 공공건물들-시청, 도서관, 병원-을 신축할 수 있었다.
*미국 도시들의 성장
-19세기 전반, 파리: 중소기업들의 도시.

나폴레옹 3세와 조르쥬-외젠 오스망 남작이 프롤레타리아가 불온해지는 것을 두려워해 펼친 정책으로 산업화를 통한 파리의 대규모 성장을 사실상 방해함.
-“세계의 정원” 북미 ~ 인구가 10만 명을 넘는 ‘대’ 도시가 1850년에는 6곳 -> 1900년 경에는 그런 도시들이 38곳, 미국인 5명 중 1명이 그런 도시에 거주.
-미국 도시들의 눈부신 성장의 몇 가지 요인들 – 이민, 유럽의 투자, 소비자의 전반적인 성장, 무엇보다도 제조업, 특히 대량 생산의 급격한 발달
*뉴욕의 19세기 산업화 시대의 출현
-영국과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온 대규모 이민자들 + 호황을 맞은 자분주의 경제의 나라
-거대한 항구 도시 뉴욕.1860년 고담Gotham의 인구는 1백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 중 42%는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혈통보다는 재산에 의해 규정되는 계급 차별
-놀랄만한 사회적 유동성 : 미국 공장에서 일하는 육체 노동자들은 다른 곳에서보다 훨신 좋은 기회를 누렸고 그의 자손들은 그보다도 더 좋은 기회를 누리며 유럽에 있는 육체 노동자들보다 더 출세해서 중산층에 심지어는 상류 계급에 진입했다.
*내륙의 도시들
-신시내티.

1800년에 겨우 750명이 거주하던 자그마한 변경의 정착지에서 40년 후 1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북적대는 도시로 성장
-제조업 성장에 이상적인 중서부 도시들.Porkpolis 신시내티.
-세인트루이스.

19세기 시작될 무렵 2~300명의 고향에서 세기가 끝날 무렵 인구 50만의 성숙한 메트로폴리스로
-디트로이트.1850년 인구 2만에서 50년 후 20만 이상으로
-시카고 폭발적인 성장.1835년 겨우 350명 ~ 1860년 링컨이 당선됐을 때 10만 명 수준 ~ 40년 후 1백만 명을 넘어섰다
-내륙의 메트로폴리스를 장악한 거대 공장들 / 철강 제품, 농기구, 자동차 같은 내구성 소비재 생산.미국의 박동하는 심장은 중서부에 있는 도시들에 자리잡고 있었다.
*진보의 도전
-1870년대 말 세인트루이스의 빈민굴 / 공공연히 평등주의를 제창하는 나라에서 드러난 지독한 불평등 ~ 격렬한 계급 갈등
-빈민 지역에 레크리에이션과 교육 기회를 제공 ; 시카고의 제인 애덤스
-밀워키, 클리블랜드, 톨레도, 디트로이트 같은 도시들에서 부패한 시 행정부 교체 / 미국의 모든 도시들의 행정 기관 현대화: 1853년 뉴욕, 한 세대 전 런던이 주도했던 정책을 따르며 경찰에게 제복을 입히는 제도를 도입 / 많은 도시에서 소방과 교통 같은 서비스들이 처음으로 체계화됨
-1871년 파괴적인 화재 이후 3세대 동안 시카고이 주요 도서관 시스템 구축 / 시카고 예술대학, 필드 콜럼비안 박물관 건물 신축, 시카고 대학 대규모 확장
-세인트루이스 타워 그로브, 포레스트 파크 / 뉴욕 센트럴 파크
*뉴욕: 최고의 수직적 도시
-1900년경 뉴욕의 경제적, 문화적 탁월함: 전국 은행의 총 어음 교환액 60% 이상 통제 , 미국 교역 물량의 40% 이상이 뉴욕 항구로
-공간의 효율적 활용~집중과 밀집
-제조업 / 화이트칼라 노동자들 / 팽창하는 핑크 칼라 (여성 사무원)
-1904년 지하철 개통 ~ 많은 인구가 섬의 다른 주거 지역과 다운타운, 미드타운(상업지구와 주택지구의 중간)에 있는 사무 구역을 오갈 수 있게 됨
-1902년 플랫아이언 빌딩, 시카고 건축가 다니엘.

번햄, ~번햄의 바보짓,
-60층짜리 울워스 빌딩
*”나라의 관문에 마녀처럼”
-과거의 무역 도시들: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카이로, 런던
-뉴욕의 상업적 성장은 문화 생활의 개화기도 낳았다
-할렘 르네상스.1920년대의 흑인 문예운동
-뉴욕: 도시의 유리 빌딩들과 어두침침한 길의 풍경 ~ 새로운 종류의 도시의 원조 ~ 현대적 메트로폴리스
*미국이 고층으로 향하다
-시애틀: 24층짜리 스미스 타워
-전통에 더 집착하는 필라델피아, 보스턴, 워싱턴D.C.는 고도를 제한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적용된 유일한 제한 요소는 그 지역 다운타운의 부동산시장에 넘쳐흐르는 돈이었다
-“진정한 메트로폴리스는 자신들의 지위를 강력히 주장하기 위해 그런 구조물들을 필요로 한다”, <<덴버 포스트>>
-미국, 세계의 경제적 중심지 뉴욕~ 국제적인 교역과 금융, 미디어에 대한 지배력
-미국의 거대 상업 도시에서 솟구치는 고층 건물들은 공장 도시의 철제 콘크리트 외관을 하늘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vs 드높은 첨탑을 가진 유럽의 성당들, 이슬람 세계의 우아한 모스크들, 동아시아의 황궁들

Chapter 13 산업주의와 문화적 좌절
*산업주의의 지구적 함의
-19세기 말 세계 인구의 5% 이상이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들에 거주
-20세기 초반 일본 독일 러시아 ~ 미국이나 영국이 새로운 도시 환경의 충격에 적응하는 것을 도왔던 민주주의 전통이 없는 상태로 산업화됐다 : 본질적으로 중세적인 정치 시스템 하에서 산업화된 도시로 급격하게 전환한 사회들에는 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에서 현대 메트로폴리스의 거대한 그리고 종종은 비인격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문화적 좌절”이라 묘사했던 것에 대처하는 법적 구조와 사회적 태도가 모자랐다
*일본의 갑작스런 산업화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전복 후 일본은 총력을 기울여 현대화에 착수했다/메이지 유신
-제조업 경제의 발흥 ~ 도시 인구의 급격한 증가 :1920년대 무렵 일본인 4명 중 1명이 도시 거주
-굉장히 잡다한 분야의 소규모 공장들이 있던 “동양의 맨체스터” 오사카 / 1875~1920 사이 인구 5배 이상 증가
-나고야~유서 깊은 성읍에서 주요한 산업 중심지로 / 도요타 모터스의 근거지
-가와사키/후쿠오카/삿포로
-도쿄~쿄토를 대체하며 천황의 근거지가 됨.일본의 정신적인 수도 + 세속적인 수도로서 즉각적인 정통성을 획득함
-1923년 관동대지진
*”쇠로 된 괴물”
-비천하게 태어난 기능공 / 빈궁해진 사무라이들은 유서 깊은 계급간 장애물을 뛰어넘어 일본의 신흥 산업 경제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기를 꿈꿈
-학자, 정부 관료들에게만 국한돼 있던 정보는 이제 대학 교육과 대량 인쇄된 서적, 신문, 그리고 결국에는 라디오를 통해 일반인들의 폭넓은 이용이 가능해짐
*일본 도시들의 재건
-대가족 네트워크~”가정에 대한 관념이나 의식”로 더 친숙하면서 덜 호전적인 개념 위주로 도시 사회 건설 방법 모색
-가정의 위계 역설 ~ 부모/기업주/군사적 리더/정치적 리더/천황의 권위를 강화하는 효과
*나치의 실험
–<새로운 도시 Die neue Stadt>, 고트프리트 페더 나치이론가.

농경 지역으로 둘러싸인 분산화된 도시 지역 창조
-신생 통일독일의수도 베를린.축소판 미국/흥청거리는 시카고 ~ 빈민가.범죄.사생아의 놀라운 증가
-게오르크 지멜, 베를린 토박이 사회학자.
-빈 시장 칼 뤼거.1985년.공공연한 반유대주의자.
-히틀러와 그의 고몬 고트프리트 페더를 포함한 나치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 보여준 자본주의적 수완과 주도적인 사회주의 선동자로서 나타낸 두각 모두 때문에 유대인들을 독일의 도시 중산층에 대한 주된 경제적, 도덕적 위협 요소로 간주했다
-문화 전쟁 ~ 데카당스
-1936년 올림픽
-알베르트 슈페르, 12만 5천명 수용할 수 있는 돔형 집회장과 1백만 명 수용할 수 있는 아돌프 히틀러 광장을 포함한 의식의 중심지들, 웅장한 대로를 수놓은 게르마니아 대규모 메트로 폴리스 베를린 계획
*러시아: 제3의 대안
-1689년 표트르 대제 유럽 여행 ~ 새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1703년 창건
*혁명으로 가는 길
-극작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리, “모든 것이 허상이고, 모든 것이 꿈이며, 모든 것이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규모 제조 시설 ~ 노동자들의 대규모 조직화 촉진.자치위원회 소비에트 결성.1917년 10월.
*소비에트 시스템
-볼셰비키 정권
-레닌 “모스크바 노동자들을 굶주림에서 구제하는 것은 혁며을 구제하는 것이다”
-192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레닌그라드로 개명.
-1930년대의 대숙청
*”우리의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기”
-스타린.

모스크바의 웅장한 ‘구세주의 교회’ 자리에 소비에트의 전당 건설.
-니키타 흐루시초프, “우리의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 것”
-영국의 초기 자본주의 산업화의 희생자들과 비슷하게 사회주의 국가의 강제 노동자들은 티푸스와 장티부스, 기타 전염벼에 감염되기 쉬운 비참한 환겨을 견뎌냈다.
-1950년경 소비에트 시민의 50%가 도시 거주자
*공산주의의 도시 유산
-2차 세계대전 끝난 후, 산업화 도시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해 태어난 공산주의 어버니즘은 실패
-철학자 니코라이 베르댜예프, 공산주의는 드높은 포부를 품은 ‘새로운 인간’을 계발하려고 노력했지만 공산주의의 유무론 처학은 결국 인간을 ‘2차원적 존재’로 변모시키고 말았다

│6부│ 현대의 메트로폴리스

Chapter 14 더 나은 도시를 찾아서
-프로테스탄트 목사 다나 바트릿 ~ 건가에 좋고 아름다운 도시 형태에 대한 전망
*로스앤제레스의 장래성
–<더 나은 도시 The beter City>, 1907 ~ 확산형 어버니즘 개념.확 트인 지혀을 이용 제조 공장들을 주변부로 이전 / 노동 계급을 위한 주거 시설은 인구 과밀을 피하기 위해 널리 흩트려 놓기
-1908년 로스앤제레스 지방자치제 조례 재정, 부 도심과 단독세대용 주택 개발, 분산형 산업 발전 장려 // 철로 부설 / 자동차 -> 새로운 도시 성장 모델
*교외의 간략한 역사
-suburbanization
-우뚝 솟은 풍경과 공공장소의 활기 -> 도시의 주변부 저렴한 임대료와 맞바꾼 길어진 통근 거리
*50겹의 양파
-출세를 바라는 파리지앵과 도시 복판에 있는 근사한 아파트 vs 도시 변두리에서 벗어난 곳에 있는 단독 주택형 별장이나 준 단독주택형 별자을 갖는 런더너
*도시에 대한 새로운 비전
-H.G.웰스, 커뮤니케이션과 운송기술의 발달, 특히 통근 수단의 발달은 인구와 산업의 중심부 집중 필요서을 제거해줄 것 : 인구 분산 분권화 가능성
-다나 바트릿 / 프리드리히 엥겔스 / 토머스 카라일 / 에베네저 하워드
*”커다란 뜰이 있는 방 6개짜리 집”
-교외 이주에 대한 미국인들의 동경

Chapter 15 의기양양한 교외
-1980년대 중반 무렵 미국 전체 세대의 대략 2/3가 주택을 소유
-농장과 도시의 나라 미국에서 교외가 으뜸인 나라로
-1950년대 초 롱아일랜드 평지의 레빗타운, ~ 도로 시스템
*죽음의 잠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백인만 거주하는 교외와 점점 더 흑인들만 거주하게 된 도심 사이의 커져만 가는 인종 분리
-1970년 교외 거주자의 거의 95%가 백인이었다
-1960년대에 디트로이트, 뉴어크, 세인트루이스, 클리블랜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같은 산업화된 도시들에서 대도시 중심부의 저소득층 지역에서 흑인의 51% 이상이, 백인은 30%만이 살았다.
*불타오르는 마천루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스위스 출신 건축가 샤를르 에두아르 잔느레.<빛나는 도시 La Ville Radieuse>, 주거와 상업, 레크리에이션과 운송의 기능을 분리하고 도시 거주자의 즐거움을 위해 널따란 녹색 공간 제공
-맨해튼의 교량들과 고층 빌딩들이 시사하는 가능성~
*웅장한 위업들과 그것들의 한계
-르 코르뷔지에의 모더니즘 비전.
-사무용 공간 / 거대한 빌딩 / 스카이라인
*산업도시의 마지막 고통
-1세기 전 도시 개발의 첨단으로 우뚝 섰던 유서 깊은 산업도시들-세인트루이스, 맨체스터, 라이프치히-의 인구 감소 : 도심 공동화 / 주변 지역 쇠락 / 도시 정체성 자체 손창
-미국 제조업 중심지들-뉴어크, 클리블랜드, 세인트루이스, 디트로이트- / 일본 오사카, 나고야 / 토리노, 뒤셀도르프 같은 오래된 유럽의 산업 중심지도 정체되고 쇠퇴함
*보편적인 염워
-아파트 < 교외에 나만의 집을 갖는 것 *아르헨티나와 호주 *영국과 현대적인 전원 도시 -1943년 애버크롬비 계획.런던 중심부의 산업과 인구를 주변부로 옮기기 ~ 신도시 개발 -켄트나 콘월같은 시골로 향하는 이들이 전부 일일통근자였던 것은 아니다. 일부는 집이나 위성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1주일에 두세 차례만 통근하는 사람들이었다 *서유럽의 교외화 -1980년대 마드리드와 뒤셀도르프 인구 감소 -1970~77년 사이 독일의 금융 중심지 프랑크푸르트 인구 줄어듬 / 함부르크도 *유럽 도시들의 게토화 -1950~60년대 노동력이 부족하던 유럽에서 일자리를 얻은 주로 아프리카/중동 출신의 이민자들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이민자들이 인구의 30~40% 차지 -브뤼셀.교외 이주와 이민자가 확장되는 도심 저소득층 지역 장악하는 패턴 *파리에서조차도 *일본의 전원 도시들 -1970년대 중반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는 이미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 -1970년대 선진국 도시 중에서 가장 큰 메트로폴리스였던 도쿄도 외곽으로 팽창 / 신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 같은 새 부도심들을 건설, 수도 주변에 그린벨트 창출 ​ Chapter 16 후기식민주의의 딜레마 -카를로스 푸엔테스, <공기가 맑은 곳 Where the Air Is Clear>
-멕시코시티.
*식민지 시대의 유산
-스페인이 정복한 16세기 초반 인구 8만~30만 도시 테노치티틀란.아스텍의 수도.테노치티틀란의 자매도시 틀라텔롤코.
-정복자 코르테스.
-20세기 철도와 도로, 항로를 통해 거대한 규모의 세계 경제와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1930년에 인구 1백만 명에 도달
-에히도스 ejidos, 멕시코의 공동 농장.
-빈민 계급과 노동 계급의 불법 정착촌, 시후다드 네자후알코요틀, 2000년 200만 명
-이 지역의 거주자들은 임시직 일자리와 부유층이 ‘내버린 찌꺼기’는 뭐가 됐든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농경시대 이전의 원시인 사냥꾼과 채집자들’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
*시골의 도시화
*유럽의 축소판
-식민지 중심지들 – 자카르타, 싱가포르, 봄베이, 상하이, 홍콩, 케이프타운, 요하네스버그, 라고스.트리어와 안티오크, 알렉산드리아, 마르세유가 1,500년 전에 로마의 광범위한 도시 네트워크에서 종속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과 비슷하게 이 식민지 중심지들은 유럽의 중심지로부터 생계 유지 수단과 운영 지침을 하달 받았다.
-캘커타.1690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에이전트 좁 카르녹이 창건.

140년 동안 영국령 인도의 수도
-봄베이 / 남부의주도적인 항구 마드라스
-서구화된 현대적 메트로폴리스 / 더 가난하고 전통적인 메트로폴리스로 양분
-두 개의 카이로
-우주에서 가장 부도덕한 곳, 캘커타.빈민가와 범죄, 반노예, 부패 만연.

18세기 제국주의자 로버트 클라이브
-조직 폭력, 마약 유통, 매매춘의 온상 상하이
*평온한 시대
*도시 역사의 파멸적인 분기점
*불법 점거 도시의 출현
-21세기 초입 6억 명 이상 개발도상권의 도시 거주자들이 불법 정착촌에서 살아간다.페루 바리아다 bariadas, 프랑스 비동빌 bidonvilles, 파키스탄 카치 아다비스 katchi adabis, 브라질 파벨라 favela, 영어 샌티타운 shantytown
-농산물 가격의 하락, 가뭄과 남벌로 나빠진 농촌 경제에서 아사 or 비참한 정착촌 생활 환경 속으로 이주
-상파울루, 브라질 사회학자 테레사 칼데이라, “벽들의 도시”.고도로 양극화
*아프리카 도시의 비극
-농산물 수출의 감소, 대규모 산업의 부재, 전염병의 창궐, 끈질긴 정치적 불안
-서구 스타일의 대규모 교외가 전원 지역에 발달, 부유층과 기업들의 외곽 이주
*사회적 시한폭탄
-사학자 마뉴엘 카스텔, ‘정보화주의 informationalism’.글로벌 경제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국제 경제에 성공적으로 참여할 능력이 없거나 그럴 의향이 없는 인구가 대부분인 도시들은 손상을 입었다
-이란 수도 테헤란, 1979년 근본주의 정부 혁명.

Chapter 17 극동의 여왕들
*인도의 도시 혁명
-식민지 허브 캘커타 ~> 수도 뉴델리, 제국주의의 도 다른 거대한 전초기지 봄베이
-1995년 봄베이 -> 뭄바이
-방갈로르, 인도의 실리콘 밸리
-하이데라바드,
-캘커타 -> 콜카타
*동아시아가 선례를 깨다
-서울, 타이베이, 싱가포르, 홍콩
*서울의 출현
-서울~오사카,도쿄 vs 봄베이,캘커타~런던,버밍엄,리버풀
*영국의 성공적인 자손
-싱가포르와 홍콩의 발전


*싱가포르: 아시아의 모델 도시
*유교 사상의 부활
*마오쩌둥주의 하의 중국 도시들
*4대 현대화계획과 중국 도시의 부활
*상하이의 재기
*교외가 동아시아를 찾아오다

결론: 도시의 미래

*메거시티의 위기
*현대 도시 르네상스의 한계들
*물리적 거리의 파괴
*하루살이 도시의 출현
*고급 주택화의 미래 그리고 한계
*안전과 도시의 미래
*테러리스트의 위협
*성스러운 곳

추천 문헌 “도시의 역사를 탐구할 수 있는 풍성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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